ESG 관련한 강의나 강연에서 “ESG가 무엇일까요?”라 물으면 종종 “MSG”란 답이 나오곤 했다. 이제는 그런 답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ESG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말이라는 정도는 대부분 아는 듯하다.
ESG는 원래 투자시장에서 나온 용어다. 자본시장에서 투자할 기업을 고를 때 평가기준으로 주로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는가?’, 즉 재무적인 성과를 중시했다. 그러나 기업이 기후변화 등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며 온실가스 등 비재무적인 지표가 투자대상을 고르는 잣대나 기업의 가치평가 기준으로 중요해졌다. 이때 자본시장에서 비재무적인 지표를 기준으로 투자하는 것을 사회책임투자(SRI)라고 한다. 비재무적인 지표가 한마디로 ESG다.
그러나 ESG는 투자용어에 머물지 않는다. 투자영역에서 시작한 ESG가 일종의 미러링 방식으로 기업경영에 급속하게 반영된 뒤 시민생활과 사회 영역 전반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ESG투자(자본시장)→ESG경영(경제‧산업계)→ESG사회(시장‧공공‧시민사회)의 흐름이 만들어져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이끌고 있다. ESG열풍은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불가역적 변혁의 시작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ESG의 후퇴를 점치는 시각이 있다. 일부 위축이 있겠지만, 21세기 내내 인류는 기후위기 극복에 고심할 테고 기후변화 대응을 주축으로 한 ESG의 확산 또한 피할 수 없다. 다른 사회는 이미 시작되었다. AI와 ESG는 21세기 화두다.
존 웨슬리의 3 ALL 원칙
ESG를 논하려면 먼저 사회책임투자를 얘기해야 한다. 사회책임투자의 연원은 존 웨슬리 목사로까지 올라간다. 웨슬리는 1760년 ‘돈의 사용법(The use of money)’이라는 설교에서 사회책임투자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우리의 고귀한 생명이나 건강 혹은 정신을 해치는 방법을 통해 돈을 얻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악한 거래 행위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사악한 거래에는 하나님의 원칙이나 국가의 법에 위반되는 모든 방법이 포함된다. … 또한 이웃의 재산이나 이웃의 신체… 그들의 영혼을 해쳐서도 안 된다.”
그의 주장은 3대 원칙으로 집약된다. ‘열심히 벌어라(Gain all you can).’ ‘열심히 저축하라(Save all you can).’ ‘열심히 나눠 주어라(Give all you can).’ 존 웨슬리의 3 ALL 원칙은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으로 어떻게 체화하였는지를 논증한 막스 베버의 이론을 증명한 사례처럼 보인다.
동시에 영리의 한계를 설정하고 허영과 과시용 소비를 금하며 자선을 장려했다는 측면에서 건전한 자본주의의 원형을 제시했다고 거론된다. 영리의 한계를 지적한 것을 두고 웨슬리는 사회책임투자의 원조로 지목받는다. 사회책임투자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혹은 정신을 표명한 것이다. 사회책임투자의 역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3 ALL 원칙은 종교적이면서 사회적이었다.
웨슬리 정신을 이어받은 사회책임투자 펀드
1928년 미국의 파이어니어 펀드(Pioneer Fund)는 웨슬리의 정신을 이어받아 감리회가 주도했다. 주류 및 담배 회사에 대한 모든 투자를 금지했는데 그다지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1971년에 이르러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사회책임투자 뮤추얼펀드인 팍스 월드 펀드가 출시되었다. 주로 베트남전에서 돈을 버는 기업을 투자대상에서 배제하는 반전(反戰) 펀드였다. 펀드 설립자가 두 명의 감리회 목사였으니 웨슬리의 영향력을 실감한다.
‘팍스 월드 펀드’는 방위산업체 투자를 제한하였고, 구체적으로는 무기 사업 수주액이 상위 100위 안에 드는 기업을 투자대상에서 제외했다. 전쟁에서 돈을 버는 기업을 투자대상에서 빼는 소극적 전략에서 나아가 평화에 도움이 되는 기업을 지원하는 적극적 투자전략을 취한 현존 펀드다.
도박‧주류‧담배 등 이른바 죄악의 주식(sin stock)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성격을 띤 사회책임투자 펀드는 1980년대 이후 급격하게 성장했다.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항의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투자를 철회하는 캠페인에서 점차 기업의 경제·환경·사회책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투자로 확대되며 사회책임투자는 자본시장에서 비중을 키웠다.
마침내 2020년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가 연례서한에서 ESG투자를 천명하기에 이른다. 사회책임투자가 자본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블랙록이 운용하는 자산은 우리나라 1년 GDP의 4~5배 수준이다. 블랙록을 포함한 세계 10대 자산운용사가 어떤 형태로든 ESG투자를 도입했다.
래리 핑크는 2020년 투자 전략으로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앞세우며 “이제 기업, 투자자, 그리고 정부는 기후변화를 핵심으로 두고 중대한 자본 재배분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팬데믹 시대의 도래와 함께 자본에 대한 유구한 낙관론을 바탕으로 한 기존 투자에서 탈피해 사회 전반에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투자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그가 말한 패러다임 전환은 ESG투자다. 사회책임투자를 조금 더 구체화했다.
1760년 웨슬리 목사의 기념비적 설교 이후 260여 년이 흘러 마침내 사회책임투자가 자본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자본주의의 본질이라 할 자본시장은 돈 놓고 돈 먹는, 그야말로 수익률 말고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는 탐욕 그 자체였으나, 이제는 수익률 말고 ESG를 투자 원칙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경천동지할 결정을 내렸다.
가장 바뀌기 힘든 세력이 이렇게 바뀐 데는 여러 이유가 있고, 그 뒤의 움직임에서 보듯 ESG투자에 부침이 있긴 했다. 다만 이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알든 모르든 다른 세상이 열리는 중이다. 웨슬리 목사가 2~3세기를 앞서 통찰한 셈이다. 그러나 교회는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에 교회가 세상에서 의미 있게 살아남기 위해, 하나님의 의지를 지상에 실현하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ESG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그 모습을 하나씩 제시하고자 한다.
이 글은 <기독교세계> 1월호 "ESG교회의 모색"에 실린 글입니다.
<기독교세계> 정기구독 신청 바로가기